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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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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南面) 지명유래
 

남면(南面)




1895년(고종32년)에 2개면(하남면, 하동면)이었으나 1914년 3월 지방행정구역의 대폭 개편으로 인하여 하남면과 하동면이 병합되어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공산치하에 강점되었다가 1950년 6월 25일 남침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격전지가 되었다.




1954 년 4월 1일 수복주민이 정착하게 되면서 군정을 실시하여 오다가 동년 11월 17일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으로 민정을 실시하면서 16개리를 관할하였으나 1971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대통령령 제6425)으로 상, 하수내리가 인제군으로 편입되고 인제군 두무리가 남면으로 편입되면서 16개리가 21개리로 개편되었다.




적리(笛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옛날에 절이 있었으므로 절골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적골 또는 적동(笛洞)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리(笛里)라 하여 남면에 편입되었다.




적동(笛洞)【마을】적리


양지적골【마을】양지적동, 양지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


샛말【마을】적리에 있는 마을로 능허대밑에 있었으나 6.25사변후에 집이 없음


외적동(外笛洞)【마을】벌적골이라고도 하며, 양지 적골 바깥쪽 벌판에 있는 마을


능허대터(凌虛臺)【터】적골에 능허대가 있던 터


고쿨잿들【들】양지 마을앞에 있는 들


고정막골【들】양지 적골에 있는 산골짜기


골적골【골】적골 뒤에 있는 골짜기


곰낭골【골】골적골 옆에 있는 골짜기


구락골【골】곰낭골 옆에 있는 골짜기


남녘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논골【골】논이 있는 골짜기


문지방골【골】지형이 문지방처럼 생겼다 함


벙골【골】전에 부엉이가 많았다 함


분톳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박달골【골】골적골옆에 있는 골짜기로 일명 비둑골이라고도 함


산젯골【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길재골【골】박달골 우측에 있는 골짜기


서직골【골】수리 봉 밑에 있는 골짜기


소턱골【골】전에 소(沼)가 있었다 함


수정골【골】문지방골 옆골짜기로 숫돌과 수정이 많다 함


발비트골【골】수정골 좌측 골짜기


작은 어덩골【골】아랫말에 있는 골짜기(아랫말은 양지적골임)


초놋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큰 어덩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가는 잿등【산】양지적골에 있는 산


산덕잿등【산】양지적골에 있는 산


둥지안【산】대암산 중턱에 있으며, 둥지처럼 생겼다 하여 둥지안이라 함


소고닛등【산】골적골옆에 있는 산


수리 봉【산】전에 독수리가 많이 나타났다 함


주산댓등【산】중고개 아래쪽에 있는 산


큰 언턱산【산】골적골에 있는 산


길재등【산】한전리로 넘어가는 등


중고개【고개】골적골에 있는 고개


가매바위【바위】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함


깃대바위【바위】소고닛등 넘어에 있는 바위


우능바우【바위】소리가 울리는 바위


고쿨잿-보〔곡현보〕【보】고쿨잿들에 있는 보


곡현보(谷峴洑)【보】고쿨잿보를 말함


적리교【교량】본마을과 양지마을을 잇는 다리(1992년 준공 76m)






가오작리(佳伍作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가오자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애골, 웃광치(上廣峙), 아래광치(下廣峙)를 병합하여 가오작리라 하였으며 1971년 1월 1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아래광치를 분할 가오작1리, 가오작2리로 관할하였다.




가오자기【마을】가오작리


비석길【마을】김기필(金基弼)의 비가 서 있는 마을


아래광치(下廣峙)【마을】광치령 밑에 있는 마을로 유화동(柳花洞)이라고도 함


양지 가오자기〔양지가오작〕【마을】양지쪽에 있는 마을


여냇골【마을】가오작리의 으뜸되는 마을로서 연화동이라고도 함


연화동(蓮花洞)【마을】→여냇골


웃광치(上廣峙)【마을】광치령 북쪽에 있는 마을


고사리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큰 골짜기로 고사리가 많았다 함


곰의 덕골【골】전에 곰을 잡기위해 덫을 놓았다 함


과우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광치령(廣峙嶺)【고개】가오작리에서 인제 원통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마루가 평탄하고 광할함


광치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너럭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늡박골【골】동호직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동직골【골】여냇골옆에 있는 골짜기


다래번득골【골】전에 다래가 많았다 함


문지방골【골】바위가 문지방처럼 생긴 골짜기


번득골【골】수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빈도릿골【골】양지 마을에 있는 산골짜기


사냥빈골【골】이골짜기에 짐승이 많았다 함


사탯골【골】적리와의 사이에 있는 산골짜기


서낭골【골】서낭당이 있는 골짜기


송직골【골】비석거리에 있는 산골짜기


만귀미【골】물이 구비친다는 골짜기


홍가득골【골】전에 홍씨가 살았다 함


작은 가득골【골】홍가득골 아래에 있는 골짜기


문박골【골】문안들 골이라고도 함


바랑골【골】문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갬수골【골】바랑골 옆에 있는 골짜기


전개집골【골】전에 전씨(全氏)의 기와집이 있었다 함


절텃골【골】전에 절이 있었다 함


제비집골【골】이곳에 구제비(칼새)집이 많았다 함


화랙골【골】광치령 뒤에 있는 골짜기


수리봉【산】산모양이 독수리처럼 생겼다 함


가지봉【산】산모양이 가지처럼 생겼다 함


비득재【산】구현(鳩峴) 산모양이 비둘기와 같다 하며 일명 구현산이라고도 함


자지봉【산】산모양이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 함


땡비보【보】땡비벌(땅벌)처럼 일하는 사람이 만든 보


맹가보(孟哥洑)【보】맹씨가 만들었다는 보


맹세보【보】맹가보 밑에 있는 보


버덩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빈도릿보【보】빈도릿골 아래에 있는 보


새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세밋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안구밋보【보】안구미에 있는 보


책바위【바위】송직골 앞에 있는 바위로 책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함. 일명 누룩 바위라고도 함


먹뱅이【바위】광치령 부근에 있는 바위


벼락바위【바위】광치령 부근에 있는 바위


죽곡로【길】죽곡리로 넘어가는 도로로서 6.25사변중에 개통된 길






야촌리(野村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멀리 구멍이 뚫어진 용소가 있으므로 멀구리 또는 원화촌(遠花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밤골을 병합하여 들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야촌(野村)이라 하여 남면에 편입되었다.




멀구리【마을】→야촌리


바깥 멀구리【마을】멀구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


안 멀구리【마을】멀구리 안쪽에 있는 마을


원화촌(遠花村)【마을】→야촌리


몰구지(沒龜池)【소】야촌리 내원평(內原坪)과 외원평(外原坪)이라고도 함


오리골【골】골안에 연못이 있어 오리들이 많이 날라와 붙여진 골짜기.(현재도 연못이 있음)


먹뱅이골【골】밤골 안에 있는 좌측 첫 골짜기


맹골【골】밤골안에 있는 좌측 두 번째 골짜기


맡방골【골】밤골안에 있는 좌측 세 번째 골짜기


율동(栗洞)【골】밤골, 밤나무가 많았다 함


서직골【골】밤골 안에 있는 우측 두 번째 골짜기


텃골【골】밤골 안에 있는 우측 첫 번째 골짜기


재궁골【골】전에 윤씨(尹氏)의 묘막(墓幕)이 있던 곳이라 함


늣박골【골】밤골안에 있는 우측 세 번째 골짜기(만전동이라고도 함)


산두네미【골】밤골안에 있는 네 번째 골짜기


충창골【골】오리골 옆에 있는 골짜기


소장골【골】안몰구지 끝에 있는 골짜기


죽골【골】용하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비행장 들【들】비행장 부근에 있는 들


말무덤 고개【고개】죽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소로길 중앙에 말무덤이 있다 함(일명 재궁고개라고도 함)


용소【소】밤골입구에 있으며 산밑으로 굴이 멀리 뚫어진 소(일명 우렁소, 우렁골소라고도 함)


평풍바우【바위】바위모양이 평풍처럼 생겼다 함


용앞보【보】용소 아래에 있는 보


용할보【보】서천변에 있는 보






용하리(龍下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갯말, 멀구리 일부를 병합하여 야촌리에 있는 용소 아래쪽에 있어 용하리라하여 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1월 1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하1리와 용하2리로 분리되었다.




갯말【마을】갯가에 있는 마을(갯모퉁이라고도 함)


멀구리【마을】야촌리에 걸쳐있는 마을


정지골【골】용하중학교앞 골짜기


방앳골【골】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 함


빙골【골】심한 낭떠러지가 있는 골짜기


잣나무골【골】잣나무가 많은 골짜기


재칫골【골】밤골 밑에 있는 골짜기


접짓골【골】전에 정자나무가 있던 골짜기


죽골【골】양구읍 죽곡리 뒤로 통하는 골짜기


갑박골【골】죽골 밑에 있는 골짜기


괸들보【보】괴어 놓은 것 같은 돌이 있는 보


바깥갯사리보【보】갯말 앞에 있는 보


두둘배기【묘】용하초등학교 정문앞에 있는 묘로서 묘앞에 두개의 큰돌을 세워 놓았음(현재 누워있음)


소막거리【마을】옛날에 소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남면 사무소 위치라 함


개사리 보【보】괸들보 밑에 있는 보


설통바위【바위】바위밑에 벌통이 좋으면 벌이 잘 든다하여 설통바우라 함


자래바우【바위】자라처럼 생긴바위로 청리와 용하리 경계에 있음


갑박골 약수【약수】갑박골 입구에 있는 샘물로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음(산골이 있음)




※거북동산(산) : 용하리 마을 복판에 있는 산으로 거북등처럼 생겼으며 용하리, 야촌리, 청리, 송우리를 통털어 지형지세가 배형상으로 생겼으며 배중간에 돗을 꽂는 곳의 형상으로 생겼다 함






청리(晴里) 




본래 양구군의 하동면지역으로서 청동(晴洞) 또는 개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삿가지골, 산루네미, 솔숲말, 무쇠점, 원동지골, 장막골을 병합하여 청리라하여 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17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리 1,2를 3,4로 분리되었다.




개멸【마을】청리


무쇠점【마을】무쇠점골


샛갓골【마을】샛가지골 일명 삿갓골이라고도 함


샛 모퉁이【마을】한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솔숲말【마을】전에 솔숲이 있었던 마을


무쇠점골【마을】수철동(水鐵洞) 옛날에 무쇠점이 있었다 함


원동지곡(元同知谷)【마을】원동지골-원동지라는 사람이 개척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


입동(笠洞)【마을】샛가지 골


청동(晴洞)【마을】청리


산두네미〔산두평〕【마을】무쇠점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


모래둔지【마을】모래가 많다 함. 왕사평 마을


가는골【골】골짜기가 가늘게 생김


가락골【골】좁고 깊어서 가락처럼 생긴 골짜기


늪골【골】봉당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봉당골【골】골짜기가 봉당처럼 넓다 함


대추나무골【골】대추나무가 많은 골짜기


저고리골【골】골모양이 저고리처럼 생겼다 함


보든골【골】저고리골 밑에 있는 골짜기


둔둑골【골】둔덕이 저 있는 골짜기


뒷골【골】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


맹골【골】맹씨가 살았다는 골짜기


무밭골【골】무밭이 있었다 함


문 바웃골【골】문바우가 있는 골짜기


버드나무골【골】봉당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빈장골【골】어름이 삼복더위에도 있다는 골짜기


삿가지골【골】골짜기 형이 삿갓처럼 생겼다 함


사기점골【골】봉당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산두평【골】산두네미


산숫골【골】무덤이 많은 골짜기


산제나무골【골】산제를 지내는 나무가 있는 골짜기


새뭇골【골】샘물이 나는 골짜기


생객골【골】원동지 골 옆에 있는 골짜기


쇠덕골【골】전에 쇠점이 있었다 함


시재밭골【골】시제를 지내는데 쓴밭이 있다 함


신배나뭇골【골】신 배나무가 있었다 함


아래 피악골【골】모래둔지에 있는 골짜기


안가짐골【골】전에 안씨의 집이 있던 골짜기


악뭇골【골】약물이 있는 골짜기


움묵골【골】우물이 있다 함


음지 저울골【골】산두, 청리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이삿골【골】전에 이씨가 골짜기를 이루었다 함


장막골【골】무쇠점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역골【골】장막골 안에 있는 골짜기(맹골 옆 골짜기)


진비장잇골【골】원동지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금산(錦山)【산】청리와 송우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


새들【들】새로 개간한 논이 많다 함


두무동 고개【고개】원동지골고 모래둥지 사이에 있는 고개


새묵골 고개【고개】양구로 가는 고개


소도촌령(小桃村嶺)【길】용하리에서 청리를 거쳐 원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 6.25전후에 개통됨


갯골령【고개】인제읍 남북리 갯골로 넘어가는 고개


굴아우바위【바위】깊은 굴이 있는 바위. 이 바위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석달 열흘만에 야촌리 우렁소로 나온다 하는데, 임진란때 어느 무당이 이 바위굴에서 피란을 하다가 일본인에게 죽어서 그 귀신이 있다 함


문바우【바위】문바웃골 안에 있는 바위로 문모양으로 생긴 바위


촛대바위【바위】촛대처럼 생긴 바위, 문바위와 같이 있음


샘보【보】샘이 나오는 보


검은 뱅잇보【보】검은 바위가 있는 보


느름나무 보【보】느름나무가 있는 보(군부대가 주둔 없어짐)


말등바위【바위】이싯골 서쪽에 있는 바위로 큰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바위




※용산둔지 : 옛날에 아이를 낳았는데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있어 장사를 낳았다하여 죽였는데, 무덤에서 용이 나와 울었다하여 용산둔지라 한다고 함






송우리(松隅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소나무가 많은 모퉁이 안쪽에 있으므로 솔로루, 또는 송우(松隅)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정동(陶井洞)을 병합하여 송우리라 하였다.




솔로루【리】송우리(또는 솔모루)


도정동(陶井洞)【마을】지르물


지르물〔도정동〕【마을】솔모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질그릇을 굽던 우물이 있음


왓골【골】기와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골짜기


왜갈마뭇골【골】왜가리가 집을 짓는 나무가 있었음


이장골【골】지르물 뒤에 있는 골짜기


바우배기들【들】송우리 들복판에 바위(고인돌)와 묘가 있어 붙여진 들


이장골 고개【고개】이장골에 있는 고개






창리(蒼里) 




본래 양구군 남면지역으로서, 옛날에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동(蒼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산(馬山)을 병합하여 창리라 하였으며 그 후 1971년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1,2로 분리되었다.




창동(蒼洞)【마을】창리


마산(馬山)【마을】마을 뒷산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하여 마산 마을이라 함


큰골【골】마을뒤에 있는 큰 골짜기


고사리 골【골】청리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골짜기


다래박골【골】큰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동백골【골】청리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골짜기


삼박골【골】뱀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알가지골【골】큰골 우측 첫 골짜기


사신독골【골】큰골과 고사리골 상이에 있는 골짜기(6.25당시 비행기가 떨어진 골짜기)


화상골【골】마산 중간 골짜기


배나무골【골】큰골 좌축 첫 골짜기


뒷들【들】창동 뒤에 있는 들


가래나무들【들】전에 이곳에 가래나무가 많았다 함


동막산(東幕山)【산】마을동쪽을 막아선 산이라하여 동막산이라 함


뱀산【산】산모양이 뱀처럼 생겼다하여 뱀산이라 함


횃봉【산】정월대보름 달맞이 횃불놀이를 하였다 함


우뭇골【골】마산 뒤에 있는 골짜기


실골【골】실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골짜기


청리고개【고개】청리로 넘어가는 고개


동막고개【고개】동막산에 있는 고개


수반들【들】동리 앞에 있는 들


쇠쟁이들【들】창동밑에 있는 들(현, 방공국 위치)


지밑들【들】창리에 달린 들


큰개울【내】창리 앞에 있는 큰하천(서천)


큰골개울【내】큰골에서 내려오는 소천


샘보【보】샘이 많은 곳에 있는 보


지밑보【보】지밑들에 있는 보


행길서보【보】황강리로 건너가는 보






황강리(黃岡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봉화대 밑이 되므로 황강이라 하였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황강리라 하였다.




봉황대(鳳凰臺)【산】비봉산


비봉산(飛鳳山)〔봉황대〕【산】황강리 뒤쪽에 있는 산


이득소 안산【산】이득소 뒤에 있는 산


빙골【골】마을뒤쪽에 있는 산 골짜기


봉제막골【골】마을뒤에 있는 큰 골짜기


미역골【골】마을 뒤로해서 송청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황금 막골【골】마을뒤 좌측 작은 골짜기


빙골들【들】황강리 마을앞에 있는 들


이득소【소】마을 동쪽, 서천에 있는 소


지당 나무【나무】마을뒤 아람드리 소나무가 102그루 있으며 매년 마을에서 산치성(음8월13일) 드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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