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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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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면(亥安面) 지명유래
 

해안면(亥安面)




해안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고치고 마을에는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었으며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하여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해"자를 쓰기 이전에 "바다해"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해안을 조사하면서 선사시대 유물과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 된 적이 있다. 이것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가 아니었나 생각 된다. 조개껍질은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조갤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가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이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면전체가 눈 밑에 있어 면전체가 한마을 같다고 했다.






현리(縣里)




원래 해안소가(亥安所) 있었던 곳으로 춘주(춘천)부에 딸려 있다가 조선시대 4대 세종 6년(1424년) 양구군으로 이속되어 현리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월(子月), 추덕이(楸德伊, 가래덕이), 상평(桑坪)을 병합하여 현리라 하고 해안면의 소재지가 되므로 해안이라 하였다.




1953 년 휴전 전까지 격전지가 되었었으며 그때 미군들이 이곳의 지형이 주발처럼 생긴 분지라 하여 펀치 보올(Punch bowl)이라 하였다. 현재의 현1리와 2리는 6.25이후 새로 조성된 지역으로 입주민들의 관리를 위하여 집단촌을 조성함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해안면의 행정종합리가 되었다.




가래덕이〔추덕이〕【마을】상평 서쪽 둔덕에 있었던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6.25전쟁으로 폐동됨


동막동(東幕洞)【마을】현3리 지역으로 현 터가 있던 곳. 양지말과 응달말이 있었음


자월【마을】동막동 남쪽으로 지금의 농협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상평【마을】동막동 뒤쪽의 들판에 있던 마을로 뽕나무를 많이 심어 붙여진 이름이며 오유리 사이에 한고개가 있음. 6.25전쟁으로 폐동됨


돌무루【길】현리 삼거리를 말함


방치굴【굴】와우산에 있는 굴


청명한【들】방치굴 너머에 있는 들


외술배기【마을】현재 중학교 앞에 있는 곳을 말하며 옛날에는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가 해안면의 중심지였다고 함. 외솔배기


진고개【고개】서화로 넘어가는 고개


지구말【마을】현1리의 동막동 가기 전에 있는 마을로 그네터가 있어 해안면민이 그네를 탔었다고 함


지둔지【마을】현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비석거리라고도 함


송죽마을【마을】현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월산리【마을】현리 동쪽에 있는 마을


후리【마을】현리 동쪽에 있는 마을


수청골【골】가래덕이에서 흐르는 골짜기


바람골【골】상평 서쪽 골짜기


장명골【골】현3리 지당이 있는 골짜기


돌산밭골【골】팔각정 북쪽 골짜기


물골【골】해안 전체의 물이 이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으며 서화, 가전리로 가는 골짜기


팔매둔지【능선】해안 초등학교 뒤에서 동막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예전에는 헬리콥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비행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농경지 정리로 비행장은 없어지고 없음


노적봉【산】동막동 뒷산


뒤매기령【고개】추덕이에서 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빨딱고개【고개】월산리를 넘는 고개에 아주 가파른 령을 말함


달산령【고개】빨딱고개 안으로 가서 금강산으로 가는 고개


방축골【굴】일제시대때 장마때면 범람이 잦아 축대를 세워 농경지를 보호하던 것이 지명유래가 됨


해안재건비【비】1956년 마을이 복구된 기념으로 세운 삼거리에 있는 돌비인데 "정의의 피로 물들인 펀치볼에 평화여 길이 깃드라"라고 새겨 있음


동막동 지당 : 팔매둔지에 있었는데 피나무 제당이라고도 불리웠음






오유리(五柳里)




오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오류동, 오릿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운천리를 병합하여 오유리라 하였다. 8.15해방후 북한에 있다가 1951년 수복 후 군용지로 쓰이다가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해안면 오유리가 되었다. 후에 중대가 생기면서 만대리의 운전동을 병합하여 오유 1, 2리도 분동하였다.




운천리 (雲川里)【마을】개울에 구름이 많이 끼여 붙여진 이름으로 큰오릿골에 위치하던 마을로 주막집이 많았다고 함


소오유동(小五柳洞)【마을】작은 오릿골에 위치한 마을


운전동(雲田洞)【마을】밭에 구름이 많이 끼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오유1리 길 아래 마을


중대(中隊)【마을】6.25전쟁 후 수색중대가 있었던 자리에 1962년 입주하면서 붙여진 이름


외솔백이【마을】현리에서 오유리로 넘어가는 길옆으로 현재 해안중학교 앞 도로변으로 1,000년 됨직한 큰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며 2005년 오유2리가 새농촌운동을 하면서 나무가 있던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외솔쉼터라고 불리우고 있음


큰오릿골【골】마을에서 제일 큰 골짜기


작은 오릿골【골】큰 오릿골 옆에 있는 골짜기


웅장골【골】오유리 저수지밑 골짜기


한고개【고개】큰 고개라는 뜻으로 작은 오릿골에서 동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두물령【고개】두밀령이라고도 하며 작은 오릿골에서 동면 후앙골로 넘어가는 고개


운천봉【산】운천리에 있는 봉우리


소오류봉【산】작은 오릿골에 있는 봉우리


모두돌봉【산】작은 오릿골에서 동막동으로 가는 한고개에 있는 봉우리


덕장포(德場浦) : 덕장개라고도 불리우며 현재 오유1리와 오유2리 사이를 말함. 평창이씨 선산이 있음


오유저수지【저수지】큰오릿골 왼쪽에 중대 입주민을 위하여 뜰을 조성하고 저수지를 만든 것임


외미소【소】중대 앞 도솔천에 물이 돌던 곳의 소(沼)를 말하며 그 위에 물레방아간이 있었다고 전해짐


절터【터】현재 비행장 너머에 수십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절의 규모가 장엄하고 우아하여 금강산을 찾는 길손이나 승려의 수련장으로 쓰였던 곳이었으며 석가탄신일에는 많은 신도가 몰려와 그 곳에서 쌀을 씻으면 쌀 씻은 물이 큰 개울까지 뿌옇게 되었다고 한다.






만대리(萬垈里)




넓은 뜰에 만호(萬戶)가 충분히 살 수 있어 만대동(萬垈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독산촌(獨山村), 평촌(坪村), 내동(內洞), 운전동(雲田洞)을 병합하여 만대리라 하였다. 후에 운전동은 오유리로 병합되었다. 1951년 국군이 탈환하여 군용지로 쓰였다가 1956년 민간인이 살게 되었다.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 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가 되었다.




독산촌【마을】평촌 남쪽 도롱봉 위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던 마을로 현재 저수지 공사장 위 벌판을 말함


평촌【마을】만대리 남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들이 넓어 붙여진 이름


내동【마을】만대리 동쪽 산골짜기 안에 있었던 마을로 양지말, 음지말이 있었음


새마을【마을】오유리 북쪽 마을로 옛날 만대장터가 섰으며 6.25전쟁후 새로 조성된 마을. 새터메기라고도 불리움


만대장【마을】해안면 장이 섰던 곳으로 1일, 6일 장이 섰었는데 6.25전쟁으로 폐장되었다.


차두와치【마을】구시장 뒤쪽 잣나무 조림지 밑에 있던 마을


차주아치【마을】옛날 장이 서던 곳(구장터)


덕만이 마을【마을】만대리 1,200번지에 있던 마을


상촌모두미【마을】심메마니(산삼캐는 사람)이 살던 곳


둔전골【골】만대리 동쪽에 있던 골짜기


억세밭골【골】


어두원이【골】어두운 골짜기


무개골【골】낭대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대암산 큰골짜기, 큰골, 대암골로 불리움. 대암산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로 예부터 해안면 주민이 이곳에서 소를 잡아서 일년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는데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음


탑골【골】해안 터널공사장 골짜기


심소곡【골】대암약수터 골짜기


피나무둔지【골】돌산령 오른쪽 골짜기로 방씨네 주막이 있었다고 함


등정골【골】만대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내동골【골】등정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산재골【골】만대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씨앗(랏)골【골】대암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호랑박골【골】호랑이가 새끼를 쳤던 골짜기라 하여 지어진 이름


낭대골【골】무개골 옆에 있는 골짜기


피아무둥이【골】도솔산밑에 있는 골짜기


독산천(獨山川)【내】독산촌가에 있는 개울로 현재 해안면 지당과 취수장이 있는 개울을 말함. 현재는 도롱봉에 저수지 공사를 실시중이며 2007년 완공될 예정.


봉우재【고개】내동 동쪽 907고지로 비상도로가 있는 위의 봉우리이며, 옛날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함


먼멧재【고개】만대리 구시장에서 후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멧돼지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배남메기【고개】심정으로 올라 가는 고개


돌산령【고개】동면 넘어가는 고개로 도솔산 우측으로 길이 있고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


도롱봉【산】독산촌 아래 모습이 도롱룡을 닮아 붙여졌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동그랗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구시장봉【산】만대리 북쪽 현리와 접한 구시장터에 있는 봉우리


운수봉【산】해안면과 인제군의 경계에 있는 동쪽 봉우리로 봉우리에 구름이 드리우면 비가 온다하여 붙여진 이름


만대냉천【샘】1919년 식수문제로 간이 상수도로 이용하였으며 수질이 매우 좋음


배바우【바위】도롱봉 앞에 있는 바우


펀치볼【지명】이곳의 지형이 주발, 대야 또는 주먹처럼 생겼다 하여 한국전쟁당시 유엔군에 의해 펀치볼(화채그릇)과 비슷하다고 하여 해안분지에 붙여진 이름


켄사스선(kansas line)【지명】1951년 9월 17일~10월 22일 만대리 지구 전투에서 제5사단이 싸울 때 군작전상 설정한 구역


헤리스선【지명】만대리 전투에서 1951년 9월 17일 제5사단 36연대 제1대대 9중대가 제일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붙여진 구역


피의 능선【지명】양구 동북방 해안 남방 "피의 능선 전투"가 1951년 10월 22일~10월 30일 기간중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만대와 가칠봉의 작전상의 구역






후리(後里)




현리 뒤쪽에 있어 뒷골 또는 후동(後洞)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석우촌(石隅村), 산뒷골을 합하여 후리라고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석우촌【마을】돌모루라고도 하며 후동 남쪽, 즉 지금의 주유소 삼거리가 됨


청룡안(靑龍岸)【능선】전망대에서 돌모루까지 이어진 능선을 말하는데 동막동을 기준으로 좌청룡이 되므로 불려진 이름


산후동(山後洞)【마을】지금의 방축골을 말함


석갓뒤 : 현재 와우산 뒤를 일컬음


와우산(臥牛山)【산】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


후동에는 옥녀산발(玉女散髮)형의 방씨시조묘가 있음






월산리(月山里)




달산령 밑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달산 또는 월산리라 불리운다.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성황당, 물골을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물골【마을】수동(水洞), 물동이라고도 하며 성황당 동쪽에 있는 마을. 남북 두 산골물이 합해지는 곳으로 북쪽골을 양지물골, 남쪽개울을 응달말골로 불리웠음


성황뜰 (聖徨뜰)【마을】후리 농경지 가운데에 큰 서낭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현재 통일관과 휴게소가 있는 곳


제재골【마을】양지말골 안에 6.25전쟁 후 제재소가 있어 불리워졌음


월산령(月山嶺)【고개】달산령이라고도 불리며 인제군 서화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특히 이곳은 여름과 겨울 기온차가 심하여 여름은 41도에서 41.5도이고 겨울은 영하 30도에서 35도가 되는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음






이현리(泥峴里)




진고개 밑이 되므로 진고개 또는 이현동(泥峴洞)으로 불리고 진고개는 비가 오면 길이 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전(山前), 석둔지(石屯地), 화소허, 수뢰골을 합하여 이현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산전【마을】진고개 남쪽 산 앞에 있던 마을로 앞에 가칠봉이 높이 솟아있음.


석둔지【마을】진고개 동쪽 와우산 앞의 둔지에 있던 마을


화소허【마을】진고개 동쪽 산의 반반한 터를 말하며 불탄터가 있어 붙여진 동네 이름. 지금의 을지전망대 앞이며 6.25전쟁후 폐동되었음


수뢰골〔수레골〕【마을】산사태가 생겨 돌과 흙이 쓸려 내려온 골짜기란 뜻으로 쓰레골이라고도 불리우며 방씨가 농사를 많이 경작했고 방씨탑도 있음. 점간마을에 대장간이 있었다고 함


송정말【마을】작은 가칠봉 남쪽에 소나무 9그루가 일렬로 있어 붙여진 이름


서희령(西希嶺)【고개】서화면 서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진고개를 말함. 지금의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사이에 있음


절골【골】사곡, 절터골이라고도 하며 가칠봉과 진고개 사이로 흐르는 골짜기로 절터가 있었다 함


수레골【골】작은 가칠봉과 큰가칠봉 사이에서 남쪽으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골짜기


미약골【골】수레골 남쪽 골짜기


제재소골【골】전망대 밑 골짜기


이새골【골】전망대 밑 큰 골짜기


쓰레바위【바위】가칠봉 밑 바위너덜


가칠봉【산】해안의 주봉이며 높이는 1,242m며 그 앞에 작은 가칠봉이 있음. 큰가칠봉과 작은 가칠봉사이를 장구맥이라고 하고 작은 가칠봉 앞은 지뢰밭으로 주의를 요함.